신앙의 글

그러게 말이다

푸른솔~ 2020. 2. 3. 11:26

 

어느 날 어리석게도 기도 중에 문득 

왜 이렇게 하나님을 힘들고 어렵게 섬겨야 하느냐고 따지듯 여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우리 인간 눈높이에서 한숨 쉬듯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정말 그러게 말이다!”입니다.

부족함이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은 결코 힘들게 섬기기를 원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하나님을 힘들고 어렵게 섬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하라는 것도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고, 내라는 것도 많아서 하나님 믿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유별나게 편향되고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거짓목사와 삯군목사들의 비성경적인 가르침이 교인들에게 그릇된 신앙관을 심어주고 그들의 위선과 타락된 악한행위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믿음이 약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과 은혜와 평강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 생각, 내 방법, 내 힘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6:24~26)

 

이 외에도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성경말씀은 많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복음송은 성경말씀을 인용한 가사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속성을 잘 말해주는 은혜의 찬양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모든 날을 주일로, 모든 생활을 예배로, 그저 감사와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부모와 함께 살듯이 자연스럽게 섬기면 되는데, 부족함이 전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치 부족한 하나님으로 여겨 그 부족함을 채워드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위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위한다며 스스로 만든 종교적인 제도와 무거운 멍에 같은 의무적인 행위에 갇혀 하나님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닌 사람중심의 종교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는 아무 격이 없이 그저 끊을 수 없는 사랑과 신뢰로 살듯이 이 세상 주인이신 하나님을 이제는 아버지로 섬기는데 특별히 무슨 방법이나 형식이 있을까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어 율법으로 정해진 그 복잡한 형식과 예식으로 제사 드려야하는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는 순종을, 옷을 찢기보다는 마음을 원하셨습니다.

(삼상15:22, 2:13)

 

구약시대 짐승을 잡아 제사 드려야 하는 복잡한 절차와 지키기 힘든 율법에 구속된 종교적 의식과 형식에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단번에 드린 제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희생을 통해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자녀로 회복하여 무거운 멍에와 얽매인 것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주셨지만, 우리는 다시 스스로 만든 또 다른 제도와 종교적인 규율에 매여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아버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에서 다시 율법적인 종교의식을 행하는 구약시대 같은 외식하는 종교인이 되어버리고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어떤 제도나 형식에 구속되어서 행하는 종교의식이나 행사가 아닙니다.

그냥 멸망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에서 구원받고 진정한 자녀로 회복되었다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사실에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벅찬 감동과 감격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하나님과 대화(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살전5:16~18)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순수한 신앙인의 참되고 복된 삶인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가 낑낑거리며 힘들게 부모섬기기를 원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녀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부모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한 인생을 살면서 과연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있을까요?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명과 율법과 성경말씀을 온전히 다 지켜 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법과 도덕 윤리도 제대로 지켜 살지 못하는 죄와 위선으로 가득한 불안전한 인간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일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부족하기 그지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이 만든 법과 윤리도덕도 제대로 지키기 못하고 하루라도 죄 안 짓고는 못사는 정의롭지 못하고 모순투성이 인생이면서 어떻게 자기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만든 주인의 뜻대로 행하고 온전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이 그 행함을 인정하고 온전하게 해주기 전에는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온전히 맡길 때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행위가 곧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며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도 의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맡기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 뜻과 관계없이 자기마음대로 한 교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소유한 어떤 것이 나는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스스로 자기십자가를 지고 자기목숨을 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헛된 짓이겠는지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행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한 것이며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 가지신 전지전능한 주인입니다.

그러한 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시겠습니까?

(바람 같은)재물이겠습니까? (물 같은)헌신이겠습니까? (파리만도 못한)목숨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미혹하고 속이는 거짓삯군이나 탐하고 강요하는 재물과 무거운 멍에를 지워 외식하는 기복적이고 종교적인 예식이나 헛된 헌신이 아닌 신실한 믿음으로 드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4:24)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바로 곁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함께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임하자 비로소 그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생계를 위해 종전의 자기 삶으로 돌아가 버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부르시고 세상 끝까지 복음전파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목숨 버려 순교하도록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우리로서는 불가능하도록 어렵다는 것을 역설로 말씀하신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예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데, 그 계획을 이루기위해서는 예수님만이 져야하는 십자가를 다른 생각, 즉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한 너희가 질수 있느냐 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 많은 고난과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실 것을 비로소 말씀하시자(16:21) 제자들은 당황하였고, 급기야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소리치실 정도로 예수님을 붙들고 결코 이 일이 예수님께 미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항변까지 하며,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크고도 중대한 계획을 막는 일이 발생하자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16:23)

사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예수님이 초능력의 이적과 기적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되면 한자리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큰 기대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 자기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어떻게든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저 불신자들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는 것과 크게 모순되는 잔혹한 말씀이라고 오해하거나 구원을 받으려면 자기십자가를 져야한다고 잘못 오해해서 일부러 십자가를 져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오해해서 실제 십자가에 자신을 매달고 자해하는 극단적인 어리석은 사람도 있으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십자가 지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져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 구원받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자기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려하지 말고 잠잠히 내 모습 이대로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실 때 필요한 곳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힘들지 않게 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평안하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맡기지 않고 자기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멍에와 짐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기만하는 교만이 되고 허사를 경영하는 어리석은 불신앙이 됩니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울정도로 이단이 판을 치고 샤머니즘 같은 기복적인 신앙으로 유별나게 하나님을 힘들고 요란하게 섬기는 우리나라,

오늘도 하나님은 자기스스로 무거운 짐과 종교적인 생활에 매여서 힘들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그러라고 했느냐 듯이 한숨 쉬시듯 말씀하십니다.

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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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복음송 가사

여호와는 너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며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시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너를 향하여 드사 은혜와 평강 주시기 원하노라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네 삶속에서 이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리

땅의 기름진 것으로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너를 복주시고 지키실 하나님이

너의 영혼 잘 되도록 은혜 베푸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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