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과정은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고도
아직 그 수단이나 과정에 머물러 있거나
매여 있다면 이미 목적을 이루고도
스스로 목적을 이루지 못한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고 할 것입니다.
율법과 성경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율법의 목적은 다 이루어 졌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성경의 목적 또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율법과 성경을
초월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아직도 율법과 성경에 매여서 자유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되 허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세상 어느 것도 전부가 아닌 것처럼
율법도 성경도 신앙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참 믿음을 갖도록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교사/갈3:24)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율법과 성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의 목적이 다 이루어 졌는데도
율법을 초월하지 못하고 율법에 매여서
그 율법이 오히려 올무가 되어
결국 율법의 주인이고 완성이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율법으로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처럼
우리 또한 성경을 초월하지 못하면
되려 성경에 매여서 성경이 신(우상)이
되고 올무가 되어 자유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어렵고 힘들게 하나님을 섬기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보다
그러한 사랑과 믿음을 알게 한 성경으로
오히려 서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며
성경대로 철저하게 믿는다는 믿음으로
성경위에 계신 예수님을 성경 아래로 내려
또다시 부인하는 허사를 경영할 것입니다.
3,500여 년 전 모세 이전에
율법도 없고 성경도 없고 성전도 없었던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도 성경도 성전이 없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때와 장소가 없이 일상의 삶속에서
그저 마음에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만을 순수하게 믿고 섬기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신앙은 특별하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삶속에서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 믿음, 섬김, 의지,
맡김, 바라봄 등 신앙의 모든 것이 자동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별하여 택하여 불러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선민으로
세상에서 강하고 참된 삶을 살게 하려고
모세를 통해 율법과 성막(성전)을 주셨지만
그들은 율법과 성전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스스로 율법과 성전에
매이고 한계에 갇혀서 그 율법과 성전이
정한 만큼만 하나님을 섬기고 더 나아가
율법으로 교만하고 강퍅한 마음이 되어
율법을 거스려 성전을 더럽히고
끝내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를 짓고만 것입니다.
많은 여러 기록들 중에서
서기 90년 유대 랍비들이 모인 얌니아
총회에서 구약 39권이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공식 결정되면서
총 66권으로 구성된 신.구약 성경이
만들어 졌다는 지금의 성경책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도
성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면
자기 지식의 우월과 생각의 한계에 갇혀서
성경에 매이고 성경에서 정한 만큼만
신앙생활을 하는 편협하고 완고한 믿음으로
도리어 성경의 참 뜻과 목적을 거스려
그 성경으로 얻은 작은 지식이 내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섬기는 기만의 죄를 짓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폐하여지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성경이 내 안에서
완성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나타내려는 사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잘하겠다는 어떤 간절한
생각이나 의식, 자기의 지식과 학문,
신념까지도 다 버리고 내게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순수하고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여
주인이 쓰는 대로 주인에게 맡겨진 그릇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을 가질 때
내가 성경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성경을 초월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와 의식, 지식이나 학문이
살아 있으면 그 자아와 의식, 학문과 지식이
믿음과 행함을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가식이
되게 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방해하고
되려 자신을 높이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스스로 거부하여 성경을 초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월은 고사하고
성경한번 읽기도 어렵고 읽어도 이해하기
조차 어려운 처지와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우리의 힘으로는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기에
또 성경 한번 읽지 않았다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구원 못 받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줄줄 외울 만큼 많이 읽고 잘 안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니기에
또 초월이 가능하다고 해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함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크기가
둘레 40,075km 지름 12,756km라고
하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대기권 밖으로
얼마간 멀리 나가면 평평한 줄 알았던
지구가 둥글게 한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멀어질수록
새까만 우주공간에 떠있는 지구는
마치 지구에서 다른 별들을 보는 것처럼
아주 작아져 결국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는
얼마나 작고 작은 지구라는 별에서
얼마나 작고 작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물과 생명체가 있어 푸르고 아름답지만
하나님 말씀 한마디면 한순간에 다 없어져
버릴 수 있는 작은 공 같은 둥근 별 안에서
얼마나 의미 없고 부질없이 싸우고 전쟁하며
얼마나 하찮고 헛된 것들을 인생 전부인 냥
차지하고 얻으려고 시기 미움 다툼 경쟁하고
얼마나 작고 부족한 것으로 아는 체 잘난 체
최고인 냥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
[대기권 밖에서 본 지구 표면]
[새까만 우주공간에 떠있는 아름다운 지구]
둥글게 떠있지만 지구가 끌어당기는 강한
중력의 힘 때문에 모든 물체가 지구를 이탈
하지 않고 특히 면적 3분의2가 넘는 바다의
물이 쏟아지지 않고 붙어 있는 것은 신기함.
[태양계 행성들 - 왼쪽부터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 그중에
지구 위치는 세 번째, 크기는 다섯 번째]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의 한부분인 은하수]
'우리은하'의 전체 모습은 지구가 우리은하
안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음.
[막대나선형은하/우리은하도 나선형이라고
하니 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는 은하]
[우리은하의 2배정도 크기이고 우리은하와
가장 가깝다는 안드로메다은하 / 약1조 개의
별들로 이루어졌다고 함]
~~~~~~~~~~~~~~~~~~~~~~
*사진출처: 픽사베이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은하는
2천억 개에서 수천억 개, 많게는 조가 넘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항성)들의
집합체로 우주에는 1천억 개 이상의 은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는
약4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폭 약10만 광년 두께 약1천 광년으로
지구 등 8개의 행성을 가진 태양이
은하중심에서 약2만5천~3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초속 220km정도의 속도로
은하를 돌며 공전하는데 약2억5천만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로서
빛은 1초에 약30만km를 가므로
1광년은 대략 9조4,608억km가 됩니다.
'우리은하'의 크기만 해도 이정도니
1천억 개 이상의 은하가 있는 우주의 크기를
인간이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누가 세상을 돌고 돈다고 말했을까요?
지구는 스스로 혼자 돌면서 자기를 도는
위성인 달을 데리고 태양을 돌고
태양은 자기를 도는 지구 등 8개 행성들을
데리고 은하를 돌고
은하는 자기를 도는 태양계 등 수천억 개의
항성들을 데리고 우주를 돌고
하나가 아닐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는
자기를 도는 수천억 개의 은하들을 데리고
또 어딘가를 돌지도 모르니..(?)
돌고 도는 모든 만물의 이치와 원리를
그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 외에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천체의 단계 : 위성→행성→계(항성→
은하)→우주→ ?
이처럼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는
우주가 그저 작은 것에 불가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고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넓고 큰 우주공간에서
지구가 시속 약1,600km의 속도로 스스로
도는 자전현상에 의해서 지구로부터 약1억
5천만km 떨어진 태양이 우리 눈에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것을 해가 뜨고 진다하며
그것으로 시간과 날과 달을 정하고
지구가 혼자 돌면서
시속 약10만7천km의 속도로 태양의 궤도를
1년이 걸려 도는 공전현상을
미래 우주시대를 열어가는 제4차 산업의
AI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그 옛날
지구가 둥근지도 모르고 살았던 시대처럼
아직도 해에게 소원이나 복을 빌면서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요란스러워
하는 것일까요?
비록 삶의 편리와 질서를 위해서
시간과 날 달 년 등 그러한 것들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활수단들이 되었지만
한번쯤 작고 작은 자기관점의 한계에서
벗어나 생각과 상상으로라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없는 또 밤도 낮도
시간도 없는 또 위도 아래도 없는
그리고 하늘도 없는(따라서 하나님나라의
상징으로 '천국/하늘나라'라고 말한 것을
이제는 정확하게 '하나님나라'라고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표현)
지구 밖 까만 우주공간으로 나가서
우주까지는 아니어도 우리가 사는 지구라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해가 뜨고 지는 것,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 등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복이나 소원을 비는 미신과 우상숭배 같은
하찮고 어리석은 것들에 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초월해서 세상을 크고 넓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사는 지구만이
전부인 것처럼 보는 좁은 세계관이 아닌
우주관보다 더 넓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 또한
전체를 한눈에 통으로 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부분으로 보고 부분으로 알게
되면 성경을 초월해서 그 이상을 볼 수 없으며
성경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참된 목적이나
의미를 잘 모른 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여 왜곡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경을 초월해서 실체가 아닌 것에
매인바 된 비현실적인 복이나 신비나 쫒는
미신 같은 원시신앙에서 벗어나
또 직분이나 봉사나 어떤 행함을 통해서
그것으로 교회와 하나님을 위하고 잘 믿는
다는 자부심이나 긍지, 마음에 우월감을 갖고
위안을 삼는 착각신앙과
눈치와 체면에 매인 보여주기 신앙,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의무에 매인 강박신앙과
은혜인지 내 기분인지를 잘 모르는 애매하고
막연한 신앙,
또 자기만 알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만 아는
편향되고 닫힌 눈먼 이기주의 신앙과
뭐 뭐일 것이다 하는 추측 추상적 신앙,
그리고 자기의 생각에서 만들어진 은사와
비약적 성경해석에 치우친 신비주의 신앙과
내 뜻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이 없는
아전인수의 자기주의 신앙,
마음을 깨끗이 하기 보다는 무엇이
참 성전인지를 혼동한 체 크게 짓고 만들고
꾸미고 멋을 내고 치장하는 포장신앙,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우상의 하나님을
섬기는 우매하고 무모한 신앙 등
스스로 속고 매이고 닫히고 막히고 좁은
우물 안 개구리 신앙 같은 허사를 경영하는
모든 헛된 껍데기 신앙에서 벗어나
장차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보는
보다 성숙하고 미래소망 적이며 실제적인
현실신앙을 가져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몽학선생(초등교사)인 성경을 통해
그 목적인 하나님을 알았으면
이제는 성경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사랑과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것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주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지에 먼지보다도 더 작은 지구에서
종교적 비현실 신념과 관념에서 스스로
자유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고정관념화
된 좁고 닫힌 자기신앙에서 벗어나
우주를 초월하고 성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수 믿음의 열린
현실신앙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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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니아 : 지금의 이스라엘 야브네
*카르타고 : 지금의 아프리카 튀니지
지중해 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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